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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1974)>







 

눈으로 뒤덮인 설원에 갇힌 열차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사건, 추리소설 혹은 만화나 영화를 좋아한다면 익숙한 상황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치밀한 논리적 추리와 인물들간의 대화, 심리적 갈등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추리소설의 기본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대표작 오리엔탈 특급살인은 추리소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소설이다. 살인사건, 범인, 증언자, 밀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형사 혹은 탐정은 소설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이 소설은 오리엔트 특급열차 이전의 토로스 급행열차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탐정 포와르와 데베남, 애비스너트 대령의 만남은 단순히 우연이 아닌 사건을 전개시켜나가는데 있어서 작가가 필연적으로 이들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토로스 급행열차에서 포와르가 우연찮게 듣게 되는 데베남과 애비스너트 대령의 대화는 후에 이들의 관계와 더불어 사건 해결의 단서 중 하나가 되는 중요한 상황이 된다. 자칫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이러한 암시와 복선들은 소설 여기저기에서 사건을 해결해가고, 사건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위한 윤활유 같은 역할과 독자에게는 힌트를 미리 제공해준다고 본다. 이러한 특성은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매진이라는 상황으로 분명히 들어난다. ‘왜 하필 평소에는 텅텅 비는 추운 겨울날의 열차에 이 사건이 일어나는 날에는 다양한 국적과 성별의 사람들로 꽉 있었을까?’ 이 사건은 철저히 사전에 계획되고 조작과 은폐로 이루어진 살인사건이었다. 흔히 추리소설을 읽는다면 범인은 1명 내지 공범이 있을 경우 2명 정도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가사 크리스티는 우리의 이런 편견을 비웃듯 승객전원이 범인이라는 충격적인 반전을 선물로 안겨주었다. 마치 소설 속 부크라는 인물이 사건의 추리를 하면서 영국인은 이렇다, 이탈리아인은 이렇다, 이 사람은 여자라서 이렇다는 식의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그러한 기준에서 추리를 함으로써 후에는 보기좋게 그 추리가 빗나가듯 말이다.

이 소설은 또한 열차안의 승객 12명이 배심원이자 사형집행인으로서 이 사건의 실질적 가담자였다는 것을 포와르의 추리와 사건과 살해당한 피해자를 둘러싼 범인들의 관계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 그리고 소설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던 그들의 증언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에 놀라움을 준다. 소설 속에서 ‘과연 범인은 이들 중 누구일까?’라는 생각으로 나름 추리 아닌 추리를 하던 나로서는 제9장 포와로,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다의 페이지를 시작하면서 적잖은 충격과 지금까지 한쪽에 치우쳐 있던 내 생각에 대한 허무감과 반성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아가사 크리스티의 상상력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자 그럼 이토록 나에게 충격과 재미, 그리고 뒤통수를 맞는듯한 허무감과 반성의 시간을 안겨준 이 소설의 결말은 어떠할까? 난 몹시도 기다려졌다. 범인이 너무도 궁금했던 것 만큼이나 범인이 밝혀진 상황에서 과연 어떤 결말이 일어날지 너무도 궁금했다. 극단적으로는 차장까지 한통속인 마당에 포와르와 콘스탄틴 의사, 부크의 입만 막으면 아무렇지 않게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수도 있고, 반대로 사건을 해하는 포와르와 의사, 부크가 이들의 죄를 눈감아줄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소설은 허바드 부인의 마지막 고백을 통해 사건의 확실한 매듭이 지어지진 않았더라도 독자로 하여금 사건의 전반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범인의 정체에 대한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해줌과 동시에 이들에 대한 법적제재나 확실한 사건의 해결적 종결이 아닌 독자들로 하여금 결말에 대한 다양성을 제시해 줌으로써 위에서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은 열린 결말로 이끌어주고 있다. 내 개인적인 바람은 그들의 계획대로 죽어도 마땅한 래체트 살인사건이 이대로 외부인의 소행으로 끝을 맺길 바라지만 법을 공하는 입장에서 그들도 자신들의 죄값을 치러야 하기에 유고슬라비아 사법당국에 의한 사건의 종결이 있기를 바란다.



- 대학생활 마지막 학기에 들었던 대중문학의 이해 中 -

by 호선생 | 2009/03/25 00:35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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